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문단 편집) ==== 정치국 상무위원회 ==== [include(틀:중화인민공화국 중국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회 상무위원 (제20기))] 당과 국가의 사실상의 최고 권력 기구이자 최고 의사결정기관으로써 '''중앙위원회''' 전원회의에서 선거로 선출된다. 선출된 7명의 위원은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불린다. [[중국 주석|국가주석]] 겸 당 [[총서기]]와 [[중화인민공화국 국무원|국무원]] 당조서기([[국무원 총리]])는 당연직이며, 그 외의 구성은 고정되어 있지는 않으며 인원도 적을 때는 5인부터 많을 때는 9인까지 늘어나는 등 변화를 겪었으며, 시진핑 총서기 취임 이후에는 7명으로 고정되었다. 주로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 [[중국 국무원|국무원]] 상무부총리, 중앙서기처 제1서기와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 등이 상무위원으로 선출되는 경우가 많다. 대한민국으로 대입하면 [[대통령]] 겸 당대표와 당 [[원내대표]], 5부 요인([[국회의장]], [[국무총리]], [[대법원장]], [[헌재소장]], 선관위장)과 국회 법사위원장, [[감사원장]]과 [[경제부총리]]와 방통위장이 서로 만나 국가 중대한 사항을 의논하고 결정하는 최고기구나 마찬가지이다. 정치국 상무위원의 직급은 국가기관의 최고책임자라는 의미의 정국급正國級으로 호칭된다. '68세 이상은 상무위원을 맡지 않는다(七上八下)'는 [[불문율|암묵의 룰]]이 있다. [[시진핑]]이 68세를 넘은 자신의 오른팔 [[왕치산]]을 상무위원으로 유임하여 이걸 깨려 한다는 관측이 있었는데, 일단 그렇게 하지는 않았고 대신 국가 부주석으로 삼았다. '''<현 20대 정치국 상무위원회>''' ※ 다음 인물들이 상무위원(당직)이며 별도의 직책을 겸임한다. * [[시진핑]]: 중앙위원회 [[총서기]](당직), [[중국 주석|국가주석]](공직), [[중국공산당 중앙군사위원회|중앙군사위원회 주석]](당직) 공산당 서열 1위로서 명실상부한 중국공산당, 나아가 중화인민공화국 전체의 최고영도인이지만, 그 실제 위상은 시기에 따라 상당히 변화를 겪었다. 최고영도인은 총서기, 국가주석, 중앙군사위 주석의 세 가지 직함을 갖고 있는데, 겸임이 제도화된 것은 [[장쩌민]] 때부터로, 최근의 일이다. 최고영도인은 총서기 직함을 통해 공산당 중앙위원회의 대표자로서 당 조직을 관할하고, 국가주석 직함을 통해 중국 정부의 국가원수로서 의전과 외교 업무를 수행하고, 중앙군사위원회 주석 직함을 통해 당군인 [[인민해방군]]의 최고 통수권자 역할을 한다. [[후진타오]] 시절에는 공산당과 중국 정부의 얼굴로서 대외적으로 중국을 대표하는 역할을 수행했지만 당과 국가의 각종 업무의 결정권은 후진타오가 아닌 정치국 상무위원회에 있었고, 그의 권한은 상무위원 중 1인 수준을 넘어서지 못했다. 그러나 [[시진핑]]이 1인 지도체제를 수립하면서 당과 정부의 많은 업무가 총서기의 소관이 되고, 다른 상무위원들에게 상관으로서 보고를 받는 위치가 되면서 명실상부한 최고지도자로서의 위상을 굳히게 되었다. 급기야 20차 당대회에 들어와서는 반대 계파를 상무위원회에서 일소하고 상무위원단 전원을 본인의 측근 혹은 친시진핑파로 채워 형식적으로 유지되던 집단지도체제가 붕괴되면서, 시진핑 1인 체제가 확고해지게 되었다. * [[리창]]: [[중국 국무원|국무원]] 당조서기(당직), [[중국 총리|국무원 총리]](공직) 공산당 서열 2위이자 중국의 정부수반인 국무원 총리. 상무위원 인선에 따라 때로는 3위인 전인대 상무위원장과 서열이 뒤바뀌기도 한다. 전통적으로 국가주석/총서기와 투톱으로 여겨졌고 때때로 정상회담에 국가주석 대신 참여할 정도로 위상이 높았다. 경제 분야에 대해서는 독자적인 결정권을 갖고 있었던지라, 고도성장기 시절에는 [[주룽지]], [[원자바오]] 등의 총리들이 경제성장을 주도하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때문에 국무원이 독립적으로 움직이면서 기술관료들이 득세하고 시장경제 체제가 강화되는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 당은 발목이나 잡고 권력투쟁이나 일삼는 반면, 국무원 총리는 경제에 집중하며 실제 인민들의 생활 발전에 도움을 줬다는 이미지가 있다. 이는 당중앙의 사회주의 이념체계를 크게 건드리지 않으면서 상대적으로 당의 지도에서 자유로운 국무원에 경제 문제를 일임한 의도적인 안배였지만, 총리의 대중적 인기와 그를 기반으로 한 정치적 존재감이 총서기를 추월할 정도가 되니 문제가 되기 시작한 것이다. 시진핑이 권한을 강화하고 리커창이 많은 견제를 받는 상황에 대해서 말하자면 시진핑 개인의 권력욕과 둘 사이의 권력투쟁이라는 표면적 현상이 있는 것은 사실이고, 시진핑의 권력이 기존 관례와 당원들의 예상을 벗어날 정도로 지나치게 강해진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의 바탕에는 사회주의 가치가 무너지고 절대적이어야 할 당의 권위가 훼손됨을 우려하는 당 내부의 여론이 있다는 점을 알 필요가 있다. 다시 말해 당 원로들과 각 파벌 간부 등 주요 구성원들의 공감대에 의거한 합의가 있었다는 사실이다.]가 많았고, 시진핑 집권 이후 당에 중앙재경위를 설치하고 측근인 부총리 [[류허]]를 주임으로 앉힌 뒤 경제정책에서도 당의 지도를 강조하는 등 시진핑의 1인 지도체제가 확고해지면서 총리의 위상 역시 예전같지는 않다. 결국 20차 당대회에서 시진핑의 비서장 출신인 [[리창]]이 총리로 지명되며, 총리가 총서기의 지시를 받는 구도가 굳어지게 되었다. * [[자오러지]]: 전국인민대표대회 당조서기(당직),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공직) 공산당 서열 3위이자 중국의 국회 격인 전국인민대표대회의 상무위원장. 국회의장에 대응하는 보직으로 당연히 그에 따른 외교업무도 같이 수행하고 있다. 타국의 입법부에 비해 전인대가 고무도장이라 그 위상에 비해 실권은 적은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1년에 한 번 열리는 전인대 전체회의와는 달리 전인대 상무위원회는 수시로 열리며 각종 정책 및 법률을 수립 및 집행하는 기관이니, [[홍콩보안법]] 같은 중요 법률을 통과시키기 위해서는 전인대 상무위의 협조가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또 부총리와 각 부 부장(장관) 등 상무위원 아래의 공직에 대해서는 전체회의가 폐회중일 때에도 수시로 상무위원회를 통해 임면을 결정[* [[친강]] 외교부장이 이 규정을 통한 전인대 상무위의 의결을 거쳐 해임되었다.] 할 수 있는 만큼, 실제로는 정부의 인사권을 총서기와 공유[* 국가직은 전인대에서 결정하지만, 겸임하는 당직의 인사는 당 중앙위원회에서 결정하기 때문이다. 수시 임면권은 원래는 없었으나 2021년 [[전인대]] 조직법 개정을 통해 새로 생긴 권한이다. 현재 전인대 상무위원장은 시진핑의 측근인 [[자오러지]]인 만큼 통과 당시에는 시진핑이 국무원을 통제할 도구를 획득하며 권력을 강화했다는 평가를 받았지만, 만약 전인대 상무위원장과 총서기의 정치적 계파가 엇갈린다면 강력한 견제도구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요직임은 분명하지만 그 존재감은 총리에 비해서는 옅은 편. * [[왕후닝]]: 정치협상회의 당조서기(당직),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 주석(공직) 공산당 서열 4위이자 중국의 상원 격인 정치협상회의의 주석. 중앙정치에서의 파워는 적은 편이지만 중국공산당의 전통적인 통일전선 전략의 책임자로서 경제인, 과학기술인, 문화예술인, [[화교]] 및 홍콩/마카오 출신 인사 등 중국공산당 바깥의 저명인사들을 포섭하고 관리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헝다그룹]]의 창업자인 쉬자인, 배우 [[성룡]], [[판첸 라마]] 등이 정협의 구성원이다. 20차 당대회에서는 중앙서기처 제1서기, 중앙정책연구실 주임 자리에서 당 이데올로기를 담당하던 왕후닝이 정협 주석에 임명되고, 정치국원으로 승격된 스타이펑 통일전선부장이 정협 제1부주석을 겸직하면서 대만에 대한 정치공작을 전담하는 부서임을 드러내며 이전에 비해 힘이 실리게 되었다. * [[차이치]]: 중앙서기처 제1서기(당직), 중앙판공청 주임(당직) 공산당 서열 5위이자 중앙위원회의 실무를 총괄하는 중국공산당 중앙서기처의 제1서기로서 총서기를 보좌한다. 중앙서기처 제1서기는 중앙서기처 서기이면서 정치국원인 중앙조직부와 중앙선전부 부장의 상관으로서 공산당에서 매우 중시하는 인사와 선전, 이데올로기 실무의 책임을 맡고 있다. 공직과 당직 중에서는 무조건 당직이 우위에 있고 3위와 4위 상무위원은 국회의장에 해당하는 자리니[* 물론 상무위원들은 본업 외에도 상무위원간 업무분장을 통해 당과 정부 내 여러 업무들을 나눠 맡고 의사결정권을 가진 여러 소조나 위원회[* 당연히 이런 자리들에는 실무를 맡는 정치국원이나 중앙위원급 인사들이 위원으로 참여한다.]에 조장이나 부조장으로 참여하기 때문에 전인대 상무위원장과 정협 주석이라고 권한이 전무하다고 오해하면 안 된다. 전임 장더장 전인대 상무위원장은 홍콩과 마카오 업무를 맡았고, 현임 왕양 정협 주석은 신장과 티베트를 관리하고 있다.] 실제로는 당내 3인자에 가까운 포지션이고, 원래는 이 서열 5위의 상무위원이 차기 대권주자의 자리였다. 이 때는 대외적으로 중국 정부를 대표하는 국가부주석과 고급 당료의 교육을 담당하는 중앙당교 교장을 겸임[* 중앙당교 교장은 재교육을 위해 이 곳을 찾는 차세대 관료들과 자연스럽게 교류하게 되며, 간부 양성을 중시하는 중국공산당의 특성상 당의 방침과 이념을 교육하는 기관으로서 중앙당교의 역할이 작지 않다. 결국 차기 대권주자가 자기 사람을 키워낼 수 있는 자리인 셈이다. 후계자 자격으로 이 자리를 맡은 후진타오와 시진핑은 중앙군사위 부주석까지 겸임했다.]하여 후진타오 1기 시절 이 자리를 맡았던 쩡칭훙은 후진타오의 입지까지 위협[* 당연히 서기처를 장악하게 되면 총서기의 지도력이 크게 약화되기 때문이다. 당시 조직부장이었던 허궈창, 선전부장 류윈산, 공안부장 저우융캉까지 장쩌민과 쩡칭훙의 지시를 받는 상하이방이었으니 어찌나 견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했던지 결국 쩡칭훙은 자신의 퇴진을 조건으로 후진타오의 후계자를 시진핑으로 결정하는 캐스팅보트를 행사하게 되었다.] 할 정도로 위세가 막강했다. (단, 상무위원이 9인이던 시절에는 선전담당 상무위원이 별개로 존재했음) 그러나 시진핑의 1인체제 수립 이후 차기주자를 지명하지 않고, 국가부주석은 시진핑의 측근 왕치산이, 마찬가지로 중앙당교 교장은 시진핑의 측근 중앙조직부장 천시가 차지하면서 위상이 예전만 못한 감이 있다. 20차 당대회 이후 시진핑의 30년 지기인 [[차이치]]가 중앙서기처 제1서기로 임명되고, 이례적으로 중앙위원~정치국원급이 맡던 총서기 비서실장 격의 [[중앙판공청]] 주임까지 겸임하면서 총서기를 견제하는 보직으로서의 의미는 완전히 사라지게 되고 최고지도자를 제일 가까운 거리에서 보좌하는 일본의 내각[[관방장관]]의 역할과 같은 직책을 새롭게 부여받았다. * [[딩쉐샹]]: 국무원 당조부서기(당직), 국무원 상무부총리(공직) 공산당 서열 6위이자 중국의 경제부총리 격인 국무원 상무부총리(수석부총리). 총리 [[리창]]에 이어 상무부총리 자리까지 시진핑의 비서장 출신인 [[딩쉐샹]]이 차지하면서 20차 당대회 이후 시진핑은 국무원을 완전히 장악하게 되었다. 딩쉐샹은 현재 상무위원 중 1명이 맡는 중국공산당의 홍콩마카오공작소조 조장을 겸임하고 있다. * [[리시]]: 중앙기율검사위원회 서기(당직) 공산당 서열 7위이자 공산당원을 감찰하고 징계하는 중국공산당 중앙기율검사위원회의 서기. 정부보다 당이 우위에 있는 중국 체제의 특성상 당원에 대한 감찰을 담당하는 중앙기율검사위원회가 법원과 검찰보다 우위에 있다. 때문에 부패 혐의를 받는 고위공직자에 대한 처벌은 보통 이 중앙기율검사위원회에서 시작된다. 이후 당적이 박탈되면 검찰과 법원에서 최종 판결을 내리는 식. 원래도 막강한 기관이었지만 자오러지의 전임자인 왕치산 시절 전직 정치국 상무위원인 저우융캉, 정치국원인 링지화를 처벌해 그 위세를 보여주면서 위상이 더욱 커졌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